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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기 힘든 에르메스가방 그리고 오랜역사

by 리에스더 2020. 9. 20.

시대를 초월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에르메스 백은 가죽 장인의 작업대에서 오랜 시간을 인내한 끝에 완성됩니다 
모든 스티치는 한 땀 한 땀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교한 제스처로 이루어집니다

 

에르메스 공홈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문구다

" 우린 오랜시간 정성스럽게 공들여 만들었어! 너가 에르메스 가방을 들게되면 너 자신도 명품이 되는거야!" 라고 하는것 같다 ㅋㅋㅋ

사실 나같은 평민은 버킨백이나 켈리백 같은건 넘사벽이지만 3대 명품중 하나인 에르메스가 어떻게 명품계의 명품이 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티에리 에르메스 

 

프랑스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티에리 에르메스가 15세때 전쟁과 질병으로 부모를 여이고 1821년 프랑스로 건너왔다는 설과, 종교적인 이유때문에 1828년에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는 설이있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는 프랑스 파리의 마들렌 광장의 바스 듀 롬프르 56번가에서 마구용품을 생산하는 마구상을 내면서 에르메스 브랜드가 시작되었다

 

티에리 에르메스 HERMES.COM

1880년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공방을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로 이전해 그곳에 매장을 열었다 

에르메스는 전 세계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안장과 마구용품을 납품하는 동시에,  자동차의 수가 점차 증가하자 마구용품 이외에 여행용품과 가방 같은 생활용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1900년, 아르헨티나 카우보이의 새들백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오뜨 아 크루아’ 백도 그 중 하나였는데 이 백은 카우보이들이 마구를 운반하기 편하도록 디자인된 것으로 훗날 에르메스 버킨백의 원형이 되었다

L. 1880년 에르메스 매장 R. 오뜨 아 크루아

1922년 두번의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샤를 에밀의 아들 에밀 에르메스가 에르메스의 혁신을 선두하게 되면서 에르메스는 안장과 마구에서 가죽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했다

에밀 에르메스는 캐나다 여행 중 군용 차량 후드의 미국식 개폐 장치에 아이디어를 얻어 1922년, 지퍼잠금장치 시스템에 대한 독점권을 얻으며 이를 에르메스 백에 사용하게 되었고 자동차 브랜드 부가티와의 협업을 통해 자동차 여행 백, 볼리드가 만들어졌다
세계최초의 지퍼가방 볼리드는 가방정면에 고객의 이름을 새겨주는 이름표 역할을 하는 타원형의 가죽이 덧붙여져있다

볼리드

 

 

에밀 에르메스는 과거에 대한 애착과 동시에 자신이 살고있는 동시대에 대한 열정이 강했기에 새로운 장인들을 영입했고 1925년 처음으로 남성용 의류, 골프 재킷을 만들었다 
이후 1927년에 쥬얼리를 선보였고 이어서 1928년에는 워치와 샌들을 출시했다

1927 골프제품 광고. HERMES.COM

1920년대 에르메스의 포장박스는 하얀 색에 금색 줄이 들어가 있는 형태였지만 전쟁으로 인해 염료가 부족하였던 시기에 오렌지 색이 천연 가죽 색과 가장 흡사했고 또 가장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용되어진 색이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현재의 고유색상이 되었다 

에르메스 포장은 오렌지 색을 바탕으로 브라운 색상의 라이닝과 에르메스 로고인 깔레쉬가 새겨져 있다

에르메스 오렌지포장상자

대공황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침체되어 있던 1930년대, 에르메스는 사용용도가 분명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생산했다  
켈리백으로 알려진 핸드백과 가죽 아젠다, 삭 아 데페쉐(기자용 가방), 남성용 브리프 케이스, 샹 당크르(로베르 뒤마가 부두 근처를 산책하며 배에 연결된 닻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은팔찌), 승마복 등 훗날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이 된 제품들 대부분이 이때 선보여진 것이다

샹 당크르 팔지/반지


1937년 에르메스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스카프 컬렉션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실크스카프‘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쉐'가 탄생했다

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쉐 HERMES.COM

1945년 모리스 에르메스가 수집한 프랑스의 화가 알프레드 드 드로의 19세기 석판화 '르 뒤끄 아뗄'에서 영감을받아 로고로 만들었다 
그림 속에는 마부 석이 빈 채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로고는 에르메스가 고삐를 조정할 고객을 기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한다

르 뒤끄 아뗄

1951년 4명의 딸이 있었던 에밀 에르메스는 사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었는데 이들 중 로베르 뒤마가 1951년에 에밀 에르메스의 뒤를 이어 에르메스의 대표가 되었다 
그는 최초의 실크 스카프, 미래의 켈리 백,  샹 당크르 브레이슬릿 등과 같은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로베르 뒤마 HERMES.COM

로베르 뒤마는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인 켈리 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956년, 모나코의 왕세자비 그레이스 켈리가 에르메스의 ‘쁘띠 싹 아 끄로와’를 들고 임신한 배를 가리고 있는 사진이 잡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 백을 켈리 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에르메스는 그레이스 켈리에 대한 오마주로 이 핸드백의 이름을 ‘켈리백’이라고 지었다

 

 

그레이스 켈리

1967년 헝가리 출신의 프랑스 스타일리스트, 캐서린 카롤리가 여성복 디자인을 맡게 되었고 아이코닉한 H버클을 포함한 의류와 액세서리 컬렉션을 탄생시켰다

 

1978년부터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루이 뒤마가 뒤를 이으면서 5세대 경영이 시작되면서 장 루이 뒤마는 실크, 가죽, 기성복 라인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리고 시계부문 자회사인 라 몽트르 에르메스를 설립하는 등 팔찌, 자기, 크리스탈 등의 제품 라인을 추가하며 에르메스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장루이 뒤마 HERMES.COM

1984년에 탄생한 버킨백은 장 루이 뒤마와 배우 겸 가수인 제인 버킨이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한 아이의 엄마였던 제인 버킨이 아이의 물건을 수납할 마땅한 가방을 찾지 못해 속상하던 차에  장루이 뒤마는 버킨백의 디자인을 그 자리에서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버킨백은 저녁 외출에도 낮의 일상에서도 어울리는 큰 사이즈의 우아한 가방을 모티브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제인 버킨

1992년 에르메스는 장인들이 제품을 제작하는 아틀리에와 디자인실을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기 위해 파리 인근의 팡탕 지역에 대형 유리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은 장 루이 뒤마의 아내이자 건축가인 레나 뒤마가 디자인을 맡았다

팡탕 공방

2005년에 장-루이 뒤마의 아들인 피에르-알렉시 뒤마가 에르메스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었고
2015년부터는 애플 워치 에르메스 에디션을 통해 Apple과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L. 알렉시 뒤마 R. 에르메스 애플워치

2010년 장 루이 뒤마가 사망하면서 라코스테의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2014년에는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의 증손자인 악셀 뒤마가 CEO를 맡게되었다

2020년 입술의 아름다음을 강조하는 컬렉션으로‘루즈 에르메스'를 선보이며 에르메스 뷰티가 런칭되었다

에르메스 루즈 HERMES.COM


에르메스의 장인정신 새들스티치


에르메스 가죽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인 박음질은 에르메스 역사의 시작인 마구 및 안장을 만드는 기술에서 비롯되었다
새들 스티치는 에르메스의 모든 가죽 제품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인 표시인 동시에 에르메스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에르메스의 새들 스티치는 왁스를 입힌 프랑스산 리넨 실에서 시작되며 실 양쪽 끝으로 바늘이 꿰어져 있고 두 번 겹쳐진 바느질이 두 장의 가죽을 이어줌으로써 튼튼한 제품이 만들어지는것이다 
하나의 박음질이 끊어지더라도 다른 하나는 남기 때문에 새들 스티치는 가죽 종류, 제품의 크기에 따라 2.5cm당 5번에서 14번까지 이루어진다

새들 스티치는 특정 도구를 가지고 수개월의 훈련을 거친 전문가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엄격한 품질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기계로 한 박음질과는 달리 방향은 항상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해야 하고, 모든 스티치가 동일한 조임과 사이즈로 이루어져야 한다

새들스티치 작업 / 새들스티치

 

 

에르메스 가방

 

1892년 삭 오타크루아
에르메스의 첫 번째 가방으로 켈리백, 버킨백의 초기 디자인으로 마구를 넣던 큰 가방이다

삭 오타크루아

1923년 볼리드(Bolide)

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인 지퍼를 단 가방으로 자동차에 쉽게 실을 수 있는 모양이라 ‘볼리드’란 이름이 붙었다

볼리드

1935년 켈리(Kelly)

삭 오타크루아를 작게 만들어 스트랩을 단 가방으로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빨간 악어가죽 소재의 가방을 들고 임신한 그녀의 배를 가린 사진이 ‘라이프’지 표지에 실린 후 켈리백이라 불리게 되었다

켈리백 HERMES.COM

1967년 플럼(Plume)

1930년대 담요 가방에서 힌트를 얻은 디자인으로 심플하고 기능적이다

가벼워서 깃털이라는 뜻의 플럼이라는 애칭을 갖게 됐다

플럼

1969년 콘스탄스(Constance)

다섯 번째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던 한 장인에 의해 디자인되었는데 가방이 완성됐을 때 아이가 태어나 아이의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에르메스의 ‘H’로 가방 덮개를 만들었고 가방을 메는 이의 키, 취향에 따라 끈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콘스탄스

1978년 에블린(Evelyne)

펀칭 기법으로 H 모양이 새겨진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이다
기수들이 마구 제품을 넣고 다니도록 만들어졌고 젖은 제품이 잘 마를 수 있게 H가 펀칭되어있다

에블린

1984년 버킨(Birkin)

여배우 제인 버킨을 위해 디자인된 가방으로 비행기에서 버킨 옆자리에 앉게 된 장 루이 뒤마 회장이 그녀의 혼잡한 가방을 보고‘소지품이 전부 들어가는 우아하고 큰 가방’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버킨백

1998년 에르백(Herbag)

조립식으로 된 특이하고 가벼운 가방이다

에르백

2004년 파리스-봄베이(Paris-Bombay)

인도 출신의 에르메스 가죽 장인이 의사 왕진 가방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된 가방으로  입구가 넓어 사용이 편하고 소가죽을 안감으로 사용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색을 띤다

파리스 봄베이

2007년 린디(Lindy)

2007년 ‘춤의 해’를 맞아 에르메스는 율동적인 디자인과 패턴을 선보였는데 린디는 스윙댄스 장르 중 하나다

핸드백과 숄더백을 각각 다르게 연출할 수 있는 가죽 가방이다

린디

2008년 집시에르(Jypsiere)

버킨을 메신저 백의 형태로 변형시킨 모델로 버킨의 고급스러운 디테일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옛날 사낭꾼이나 어부들이 어깨에 메던 백을 모티브로 장 폴 고티에가 재탄생시킨 가방이다

집시에르

2010년 툴 박스(Tool Box)

장인들의 공구함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가방으로 겉으로는 작아보이지만 내부는 상당히 넓다

툴 박스

 

 

왼쪽부터) 가든파티 - 더블센스 - 비치백
롤리스 - 베를린 - 카테니나
피코탄 - 후루토 - 켈리클래식 투고 클러치
이지 클러치

 

사실 우리나라 사이트에는 정말 일부분만 있을뿐 에르메스의 가방종류는 150개정도 된다고 한다

 

 

창시자 티에리 에르메스가 지켜오던 그 투철한 장인정신은 에르메스의 컬렉션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여전히 에르메스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일 것이다

현재 에르메스 가문의 자손들이 가족경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 절대 LVMH 에 빼앗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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