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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by 리에스더 2020. 9. 23.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앙리 도나 마티유 생 로랑(Yves Henri Donat Mathieu-Saint-Laurent, 1936~ 2008)

 

 

1936년 당시 프랑스령의 알제리에서 부유하고 유명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브 생 로랑은 연약한 몸에 운동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이브생로랑은  동급생들로부터 끊임없는 폭력과 괴롭힘을 당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종이 인형을 만들거나 어머니와 두 여동생을 위해 옷을 만들어 주기도 했던 그는 9살 무렵에는 자신이 언젠가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이름을 빛내리라고 말하곤 했으며 14살때 프랑스 예술가 크리스티앙 베라르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을 접한 후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나갔다

 

1954년 국제 양모 사무국 컨테스트에 참가하여 18세의 나이에 1등을 한 후 보그지의 편집장의 눈에띄어 크리스티앙 디오르에게 그를 소개하게 되면서 1955년부터 디오르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디오르 하우스가 발표한 80벌의 드레스 의 반 이상이이 그의 디자인이었을 정도로 디오르에게 재능을 인정받았던 이브 생 로랑은 1957년 디오르가 갑자기 타계한 뒤 스물한살에 후계자로 지목되며 디오르 하우스의 아트 디렉터를 맏게 되었다
1958년 이브생로랑은 어깨 폭이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트라페즈 라인컬렉션을 선보이며 파리 쿠튀르의 구원자로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trapeze line

1950년대 말의 유럽과 북미에는 경제적으로 수입을 갖는 여성들과 젊은이들의 차별화된 스타일들이 등장하면서 이브생로랑은 상류층들만의 오트쿠튀르가 지루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1960년에 비트 족의 거리 패션에 영감을 받아 “Souplesse, Legerete, Vie(유연하고 경쾌한 삶)”  컬렉션을 발표했지만 혹평을 받았고 이것이 디올에서의 그의 마지막 컬렉션이 되었다

Souplesse, Legerete, Vi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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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디올에서 독립한 생로랑은 동성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이브생로랑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하였고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샤넬이후 최고의 슈트 메이커' 라는 극찬을 받았다

 

Saint-Laurent 1962


1963에는 보이시한 룩을 발표하며 여성들에게 활동성과 자유로움을 선사하였고 1966년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희의 남장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을 위한 턱시도라는 의미의 이브닝웨어 '르 스모킹'을 발표했다
여성의 몸에 꼭 맞는 긴 재킷과 일자로 떨어지는 바지, 자보가 달린 오건디 소재의 셔츠, 헐렁거리는 넥타이, 실크 새틴의 벨트로 구성된 르 스모킹은 성에 대한 혁명이었고 생로랑은 1966년 르 스모킹 발표 이후 2002년 은퇴할 때까지 매시즌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며 이브생로랑 디자인 하우스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Saint Laurent Le Smocking


1967년에 선보인 팬츠슈트와 사파리재킷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애매해지는 변화된 사회의 예시가 되었고 시대에 뒤 떨어지는 성의 구분을 타파한 젊은 시절 코코샤넬과 뜻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이브생 로랑의 르 스모킹과 샤넬의 블랙 리틀 드레스는 유행을 뛰어넘는 클래식은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 생로랑은 존경하는 디자이너로 샤넬을 꼽았고 샤넬은 이브생로랑의 창조성에 대해 생로랑을 정신적인 계승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first pantsuit

1966년 생로랑은 중산층의 젊은 여성들을 위한 '생 로랑 리브 고쉬' 라는 기성복 라인을 시작했고 섬세한 이음새와 아름다운 비율, 완벽한 원단으로 베이직하고 심플한 라인의 옷을 만들어 더 많은 여성들이 입을 수 있도록 했으며 처음으로 여성 정장에 바지를 도입하등 독착정인 작품으로 패션계를 이끄는 이들중 하나가 되었다

 

Saint-Laurent rive gauche


1967년 이국적인 풍경, 색채감, 문화, 전통 의상에 사로잡힌 이브 생 로랑은 아프리카의 밤바라족에 영감을 받아 조개 껍데기, 나무 구슬, 동물의 이빨 모양의 비즈등을 사용한  '아프리칸 컬렉션'을 발표했다

africaine colllection

1976년에 발표한 러시안 룩에서는 러시아와 모로코,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의 전통 의상의 오렌지, 핑크, 보라색, 노란색, 그린, 빨강색과 같은 강렬한 컬러로 누빔 재킷, 페전트 블라우스, 긴 스커트 등을 창조해냈으며 뉴욕타임스는 러시안룩 컬렉션을 세계적 패션의 미래를 바꿀 혈명적인 컬렉션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1960~1970 년대에 생 로랑은 옷을 통해 스페인, 고대 중국, 페루, 모로코, 중앙아프리카, 몽골, 터키, 베네치아 등  다양한 나라의 전통 의상과 문화를 소개하였고 에스닉룩의 유행을 선도하는 큰 역할을 했다

Les Espagnoles et les Romantiques Collection
Les Chinoises Collection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모던 아트와 현대 예술 작품의 수집가인 동시에 다른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컬렉션을 완성하기도 하고, 평소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재로 삼아 오마주한 컬렉션을 창조하고 예술 작품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입을 수 있는 예술로 재탄생시켰으며 1965년 가을에 몬드리안 드레스와 1966년에는 앤디워홀의 영양을 받아 팝아트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의 작품들이 이브 생 로랑을 통해 아름다운 의상으로 탈바꿈 되었다

Pop Art
Mondrian

1966년 영화 '아라베스크'의 소피아 로렌등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하였고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를 뮤즈로 삼아 그녀의 영화 의상을 디자인 했다

1968년에는 노브라의 시스루 드레스를 선보이며 '누드 룩'을 처음으로 시도했으며 이후 오리엔탈리즘의 의상을 발표해 히피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 생로랑이 패션계의 몸 담은 기간동안 화제를 일으킨 의상은 셀 수 없을정도다

First Sheer Designs

 
이브 생 로랑의 작품들은 예술성을 높이 인정 받아 198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브 생 로랑: 25년간의 디자인'라는 제목으로 생존하는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회고전을 개최했다

 


이후 베이징, 파리, 모스크바, 도쿄등 전 세계에서 전시가 이어졌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각국의 모델들이 이브 생 로랑의 의상을 선보이는 대규모 패션쇼가 생중계되기도 했다

FIFA World Cup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002년 이브 생 로랑 디자인 하우스의 40주년 기념 패션쇼를 마지막으로 65세의 나이로 은퇴하였고 2008년 지병인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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